Sea Story

영화 속 심리

영화 <웨일 라이더>를 통해 배우는
개척의 자세

파이의 엄마는 쌍둥이를 출산하던 중 이란성 쌍둥이 아들과 함께 숨을 거둔다. 자신의 어머니와 쌍둥이 남자아이의 죽음와 동시에 태어난 파이. 파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파이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고향을 떠나버리고 파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진다. 파이가 성장하면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지만 지도자는 장남이어야 하는 관습 때문에 할아버지는 파이의 능력을 묵살하고 전통적인 여성으로서만 자라도록 강요한다.

  • · 박소진
  • 이미지 출처 ·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소녀, 세상을 품다!

지도자가 될 자격을 시험하는 관문에서 마을의 장남들은 통과하지 못하고 해변가에서는 한 무리의 고래 떼가 밀려와 죽어간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파이는 고래에게 다가가 포옹하며 진심으로 고래와 소통을 하려 한다. 그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고래가 파이를 태운 채, 바다로 헤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래 위에 올라탄 파이가 고래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뭔지 모를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어쩌면 파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 이전의 조상들로부터 탁월한 DNA를 물려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파이와 할아버지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그 능력은 오히려 여성의 삶으로서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세월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못하다고 의심되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여성의 능력에 대한 편견은 남성의 주도권을 정당화하는 한편, 여성의 지위를 종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면에 깔리 남성들의 불안이 기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성와 여성 간의 차이는 때로는 매우 극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여성은 언어와 공감능력이 우세하고 남성은 공간지각 능력이나 수학 등의 분야에서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차이뿐 아니라, 두뇌의 차이(뇌의 크기나 무게, 뇌량의 크기 등), 호르몬 등으로 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남아와 여아가 선호하는 놀이가 다르다는 것을 봐도 일정 부분 남녀 간 차이는 타고나는 측면이 있고 교육이나 문화적 환경 등을 통해 남아는 보다 남자답게 여아는 여자답게 길러지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보다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파이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인 남성적 역할이라던지 지도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집을 떠나고, 오히려 파이가 할아버지가 원하는 역할에 관심을 보이며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듯이, 남성이지만 대화가 잘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있고 여성이지만 공격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다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적응과 적응의 간극, 그 어디쯤

두려움, 공포 또는 불안 등은 위험에 대처하도록 함으로써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적응적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불쾌한 것으로 경험되지만 대개는 유익한 것, 즉 우리를 보호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따라서 우리의 선조들이나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겁쟁이들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한다면 발전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적응이 환경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어떤 면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개척을 한다는 것은 부적응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을 자신에 맞게 변화시키거나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 부적응은 성공한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응과 부적응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도전과 개척은 위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 열망은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동력이 된다.

우리나라도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여성은 할 수 없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고 남성중심의 사회에 여성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금기시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여성으로서의 삶이라고 여성 스스로도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가 제작된 지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이나 세상은 많이 변했다. 여성의 지위도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고 세계에는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도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성별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웨일라이더’는 한 소녀가 성별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자세를 통해 개인의 재능과 잠재력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다를 통해 남녀의 전통적인 역할을 벗어나 세상을 보다 포용적으로 바라보고 소통하며 우리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인류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박소진

대학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심리학에 입문해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대표로 <영화 속 심리학 1, 2>, <영화관에 간 심리학>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