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_표치우 부산지부 공제사업2팀

Prologue

한때 해상을 호령하며 전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신사의 나라, 축구의 종가, 록(Rock)의 종주국 등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해상보험 업무를 하는 나에게 영국은 다른 어떤 이미지보다 해상보험의 종가로 가장 먼저 다가온다.
물론 영국은 해상보험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에 있어서도 그 역사를 함께하고 있지만, 특히 해상보험에 있어서 영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해상보험 법규인 Marine Insurance Act(MIA)는 영국의 판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법규이며, 해상보험약관 역시 그 준거법 및 재판관할을 영국에 두고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해상보험에 있어 영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처럼 해상보험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 현지에서 Claim Course를 수강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지금 당장 실무를 하고 있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일말의 고민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
Maritime Law&
Marine Insurance Claims Course를
다녀오다

과거와 현재,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며 2,000년간 영국 역사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수도인 런던. 태풍 ‘짜미’로 인해 교육 장소였던 런던으로 도착하기까지 여러 번의 항공편이 지연과 연착을 거듭하였지만, 거의 하루가 걸려 겨우 도착한 런던의 맑은 가을 하늘은 여정의 노곤함을 모두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였다.
교육을 주최한 Richards Hogg Lindley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해상보험 관련 정산업무 등을 수행하는 업체로서 선주사와 보험중개사, 보험자 등을 대상으로 매년 Maritime Law & Marine Insurance Claims Course를 개최하고 있으며 그 역사가 무려 40년이 넘는다고 한다. 2019년에 진행된 Course에는 해상보험과 관련된 다양한 업계에서 근무 중인 15개국 40명의 수강생이 참석하였다. 이번 교육 기간 동안 캐나다의 해상운송업체 중 하나인 Fednav 소속의 Ariane와 Richards Hogg Lindley의 정산인 중 한 명인 Nicholas와 같은 테이블을 사용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Ariane와 함께 선원 Claim을 처리함에 있어서 방법과 애로사항을 함께 공유하기도 하였으며, Nicholas와는 해상보험에서 정산인의 역할 등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Course는 총 5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상보험의 기본원리로부터 시작하여 단독해손(Particular Average on ship), 전손(Total Loss), 공동해손(General Average) 등 해상보험과 관련된 이론적인 내용 설명과 함께 실무에서 진행되는 보상처리 과정 및 정산 방법 등을 실제 사례와 함께 다루어볼 수 있었다.
또한 선박의 내연기관 전문가를 초빙하여 디젤 엔진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조금이나마 선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현장에서 실무를 하며 사고와 관련된 정산서만 보았을 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많았는데, 이 내용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Course에서 매 강의 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던 내용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선박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2020년 1월 1일부터 선박 연료유에 포함된 황 함유량을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선사들은 선박에 배기가스 정화 장치인 스크러버(Scrubber)를 설치하거나 저유황유를 연료로 사용해야 한다. 강사와 수강생들은 저유황유 사용에 따라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 및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관 손상 등이 해상보험업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열띤 논의를 펼치기도 하였으며, 나 역시도 흥미롭게 들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
해상보험의 발상지,
로이즈(Lloyd’s)를 다녀오다

해상보험을 공부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로이즈(Lloyd’s)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보험 상품을 최초로 고안해내어 한때 보험과 동의어로 불릴 정도였던 로이즈는 2016년 회계연도 기준 전 세계 해상보험 시장에서 16.45%(36억 달러)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해상보험 이외의 보험에서도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로이즈는 17세기 후반에 설립되었는데, 1691년 에드워드 로이즈가 런던 템스 강변에서 운영하던 작은 카페가 그 시작이다. 당시 카페는 사업가, 선장, 의사 등 각계 인사들이 모이던 사교 활동의 중심지였다. 카페 주인이었던 에드워드는 화물선의 출발 시각이나 도착 날짜, 바다의 날씨와 만조 시각 등 중요한 해상 무역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였기에 카페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또한 에드워드는 해상무역 도중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되는 선원 및 선주와 그러한 사고를 보상해주겠다는 손님을 연결해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영국 해상보험의 시초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이즈 건물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센터로 유명한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으로 마치 공장처럼 수많은 파이프로 구성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로이즈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한다. 방문하기에 앞서 사전 승인이 필요하고, 로이즈 방문증이 있는 직원과 동행해야 하며, 정장에 넥타이까지 착용해야만 겨우 출입할 수 있다. 런던에서 근무 중인 조합 직원 권진현 과장과 코리안리 직원의 도움으로 해상보험을 공부하며 단어로만 접했던 로이즈 내부를 둘러 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과거 로이즈에서 근무했던 언더그라운드 라이터들은 보험자들이 가져오는 수많은 서류를 통해 리스크를 분석하고 요율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로 대체되었지만 그러한 전통은 여전히 이어져 로이즈의 업무시간에는 언더그라운드 라이터의 책상에서 보험자와 언더그라운드 라이터 간의 협의로 언제나 북적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후 5시를 넘겨 방문하여 말로만 듣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로이즈 건물 내부에는 ‘루틴벨(The Lutine Bell)’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종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종을 울려 사건의 소식을 알린다고 한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와 2011년 발생하였던 미국 9·11테러 사고 당시에도 이 종이 울렸다고 한다. 또한 종 앞에는 대형사고가 있을 때 이를 기록해두는 로스 북(loss book)이 놓여있는데 오늘날에도 17세기 영국 복장을 한 직원이 백조의 깃털로 만든 펜을 사용하여 직접 적는다고 한다.

•
이론과 실무,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우다

Claim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이번에 참가하였던 Richards Hogg Lindley의 Maritime Law & Insurance Claims Course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해상보험과 관련하여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으며, 강사들이 정산업무를 하며 부딪혔던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실무를 하며 생각하지 못하였던 부분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가한 담당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유수의 해상보험 관련 기업의 실무자들과 교류하며 Claim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애로사항 및 업계 동향 등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조합의 많은 Claim 실무자들이 동 Course에 참석하여 지식 함양 및 인적 네트워크를 향상해 조합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